요즘 전시장이나 갤러리에 가 보면 색이 화려하거나 화면이 꽉 찬 그림보다, 조용한 느낌인데도 눈을 붙잡는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화면은 거의 비어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종이 표면이 울퉁불퉁 살아 있고, 빛에 따라 색이 아주 살짝씩 달라집니다. 바로 이런 흐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이 미술가 송형주입니다. 화면 속에서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데도 괜히 오래 서 있게 되는 그 묘한 힘 때문에, 전시를 보고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재료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송형주
송형주 작품을 마주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색이나 모양보다 종이와 흙, 금속 같은 재료 자체입니다. 얇은 한지를 여러 번 겹치고 찢어 붙인 뒤, 다시 갈고 문질러서 표면을 만듭니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네모나 줄무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종이결 사이로 흙 알갱이가 비치고, 그 사이로 금속 조각이 아주 작게 반짝입니다. 붓질을 크게 뽐내지 않으면서도, 손이 얼마나 많이 갔는지 표면이 그대로 말해 줍니다. 그래서 관객은 그림 내용을 해석하려 애쓰기보다, 눈 앞에 놓인 재료가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상상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추게 됩니다.
조용한 화면이 주는 쉬는 자리, 송형주 작품의 힘
요즘 사람들은 일할 때도, 쉴 때도 화면 속 글자와 영상에 둘러싸여 지냅니다. 그래서인지 송형주 작품 앞에서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 큽니다. 화면의 여백이 넓고, 색도 많이 쓰지 않아서 처음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서 있으면, 종이 사이 그림자나 재료 틈에서 생기는 미세한 빛 차이가 천천히 눈에 들어옵니다.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이런 단순한 선과 면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게 해 줍니다. 핫소스 같은 빠르고 강한 영상에 익숙한 세대라도, 잠깐 숨 고르기 할 수 있는 자리를 찾다 보면 이런 작업 앞에서 오래 머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시도와 자리
송형주는 요즘 한지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넓은 공간을 통째로 쓰는 설치 작업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종이를 벽이 아니라 바닥과 천장까지 이어 붙이고, 그 사이에 흙과 금속 조각을 넣어 빛이 들어오는 길을 다르게 짭니다. 낮에는 자연 빛에 따라, 밤에는 장치를 통해 비추는 빛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이 나타납니다. 이런 대형 작업은 작품을 사는 사람보다, 직접 몸으로 느끼려는 관객에게 더 큰 의미가 있어서, 정해진 기간 전시가 끝나면 다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송형주 이름이 걸린 전시가 열리면, 작품값보다도 지금 시기에만 가능한 실험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작가들이 해외 큰 장터에 나가는 흐름 속에서도, 재료 자체에 집중하는 이 뚝심 있는 방식 덕분에 송형주를 찾는 해외 관람객과 컬렉터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이처럼 송형주 작업은 재료를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관객이 천천히 바라보게 만듭니다. 화면이 조용한 만큼 마음이 쉬어 갈 틈이 생기고, 종이와 흙, 금속이 어우러진 표면은 볼수록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전시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설치 작업까지 더해지면서, 지금 이 시간대에 직접 찾아가 볼 이유가 충분히 생겨난다고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