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처럼 익숙한 노래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르게 들리는 순간이 있어요. 오래전부터 귀에 익은 멜로디인데, 가사를 곱씹다 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와 그 시대의 공기가 함께 떠오르죠. 요즘 다시 화제가 된 심수봉의 무대가 딱 그런 느낌이네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세대가 그의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뒤늦게야 그 안에 숨은 사연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어요. 무대 뒤에서 묵묵히 버텨 온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도 함께 드러나고 있고요. 들을 때마다 한 번 더 찾아보게 되는 이름, 심수봉에 대해 궁금해지는 시점인 것 같아요.
심수봉: 한 번 들으면 기억에 남는 목소리
심수봉을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 건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죠. 본인은 한때 이 목소리가 싫어서 다른 가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는데요, 코 옆 뼈 모양 때문에 소리가 비스듬히 울리면서 지금 같은 음색이 나오는 걸 알고 나서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됐다고 해요. 덕분에 한 소절만 들어도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개성이 또렷한 가수가 됐습니다. 데뷔 초부터 직접 곡을 쓰고 노랫말을 붙이는 싱어송라이터였고, 편안한 멜로디 안에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는 스타일이라 세월이 지나도 노래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아요. 1970년대 말에 나온 노래인데도 지금 듣기에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어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에 담긴 진짜 장면
심수봉 이름 옆에는 언제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따라붙어요. 이 노래는 그냥 상상으로 쓴 게 아니라 실제로 본 장면에서 시작됐다고 해요. 친하게 지내던 꽃꽂이 선생님의 남편이 먼바다로 나가는 배를 타는 일이라, 한 번 떠나면 1년 넘게 집에 못 오는 날이 많았다고 하죠. 어느 날 그 선생님을 따라 항구에 나갔는데, 배가 출항하기 전 짧게 입맞춤을 하고 헤어지더랍니다. 배가 점점 멀어지자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말을 잇지 못할 만큼 울었고, 심수봉은 그 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떠나는 배, 여자는 남아 있는 항구라는 그림을 떠올렸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이 노래 안의 항구는 화려한 밤거리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기다리는 한 사람의 자리였던 셈이에요. 그런데 당시엔 이 비유가 엉뚱하게도 외설 논란으로 이어졌고, 심수봉은 뜻밖의 비난을 오래 견뎌야 했어요. 오해의 이유를 묻는 말에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털어놓을 만큼 상처가 깊었던 경험이었네요.
히든싱어8이 보여준 심수봉의 지금
최근 방송된 히든싱어8은 심수봉을 새로 알게 된 세대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제작진이 10년 넘게 섭외를 시도했다는 비하인드가 공개됐지만, 정작 본인은 거절한 적이 없었다고 웃으며 말해 분위기를 풀었죠. 특유의 털털한 성격이 잘 드러난 장면이었어요. 이번 회차는 이례적으로 다섯 라운드까지 진행됐는데, 심수봉의 인기곡이 너무 많아서 네 곡으로는 도저히 고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실제로 방송 내내 명곡이 끊이지 않았고, 본인도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현역 감각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포인트는 가수 손태진과의 가족 관계였어요. 단순한 선후배가 아니라 이모할머니와 조카 손주 사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죠. 요즘에는 송가인 같은 후배에게 곡을 주고, 손태진에게도 노래를 건네는 등, 심수봉은 자신이 쌓아 온 음악을 다음 세대로 건네는 중이에요. 한때 논란과 사건으로 무대에서 밀려났던 가수가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전면에서 박수를 받는 장면이라 더 눈길을 끌었네요.
지금 다시 바라본 심수봉은 한 시대의 유행을 만든 가수라기보다, 오래 버티면서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려준 사람으로 보입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에 담긴 실제 이야기를 알고 나면,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긴 기다림을 견딘 사람들의 얼굴이 함께 떠오르네요. 최근 무대를 통해 보여준 편안한 말투와 유머, 후배들에게 곡을 나누는 모습까지 더해져서, 앞으로도 여러 세대가 함께 들을 이름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