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볍게 한 잔 할 일이 부쩍 늘면서, 위스키만 돌려 마시는 게 살짝 지겨워지더라고요. 그러다 예능에서 야구선수가 눈 반짝이며 추천하던 데킬라가 계속 머릿속에 남았어요. 파티 술로만 알던 데킬라를 잔에 따라 천천히 향 맡고 마시는 모습이 꽤 낯설면서도 궁금했거든요. 결국 호기심을 못 참고, 카바 데 오로 엑스트라 아네호를 한 병 들이게 됐습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꽤 고민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경험값이다’ 싶었어요. 처음 병을 열던 날은 일부러 아무 안주도 안 꺼내고, 조용한 음악만 틀어두고 향부터 천천히 맡아봤습니다. 제가 평소에 마시던 술들과 뭐가 다른지, 과연 말로만 듣던 디저트 같은 데킬라가 맞는지 하나씩 느껴보고 싶었어요.
카바 데 오로 엑스트라 아네호 첫인상과 병 디자인
처음 박스를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병 모양이었어요. 카바 데 오로 엑스트라 아네호는 위스키보다 조금 더 납작한 직사각형 병인데, 유리 두께가 꽤 두꺼워서 손에 쥐면 묵직한 느낌이 납니다. 라벨 디자인은 과하게 화려하지 않고, 금색 포인트로만 깔끔하게 정리돼 있어요. 선물용으로 꺼내도 과하지 않게 튀는 정도라서 모임에 가져가도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잔에 따르면 색이 정말 인상적이에요. 일반 데킬라에서 보기 힘든 진한 다크 앰버 톤이라, 맥컬란 같은 숙성 위스키 떠올리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이건 5년 이상 프랑스산 화이트 오크통에서 긴 숙성을 해서 생긴 색이라고 하네요. 향은 병만 열어도 올라오는데, 코를 가까이 대면 카라멜, 바닐라, 메이플 시럽 같은 달달한 향이 먼저 확 치고 들어와요. 그 뒤로 구운 오크, 살짝 육두구 느낌도 따라와서, 솔직히 “이게 진짜 데킬라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직접 마셔 본 카바 데 오로 엑스트라 아네호 맛과 질감
첫 잔은 얼음 없이 스트레이트로 따랐어요. 카바 데 오로 엑스트라 아네호는 데킬라라기보다 코냑이나 달콤한 위스키에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입에 머금자마자 점성이 꽤 느껴지는데, 물처럼 훅 지나가는 게 아니라 혀를 살짝 감싸는 느낌이에요. 맛은 첫 입에서부터 달콤함이 확 옵니다. 카라멜, 바닐라, 메이플 시럽 같은 디저트 느낌에 살짝 다크 초콜릿과 구운 오크 향이 뒤에 붙어요. 알코올 도수는 40%인데, 목 넘김이 너무 부드러워서 자극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전통적인 아가베 향을 좋아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이거 너무 달다”라고 느낄 수 있겠더라고요. 실제로 저도 두 번째 잔부터는 약간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얼음 두 개 넣어서 온더락으로 마셔 봤는데, 단맛이 한 톤 줄어들면서 오크 향이 더 또렷하게 올라와서 훨씬 밸런스가 좋아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이트 한 잔, 이후에는 온더락으로 이어가는 방식이 제일 잘 맞았어요.
페어링, 보관, 구매할 때 느낀 점들
카바 데 오로 엑스트라 아네호를 마실 때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디저트랑 같이 먹었을 때였어요. 케이크처럼 아주 달달한 디저트보다는, 카카오 함량 높은 다크 초콜릿이랑 잘 맞습니다. 술 자체가 이미 달기 때문에, 쌉싸름한 초콜릿이나 구운 견과류 정도만 곁에 둬도 충분했어요. 시가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데킬라랑 궁합이 좋다는 말도 많고요. 주량이 세지 않거나 데킬라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면, 이 술은 입문용으로도 괜찮다고 느꼈어요. 톡 쏘는 느낌이 거의 없어서, “데킬라 무서워” 하시는 분도 카바 데 오로 엑스트라 아네호부터 시작하면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달달한 술을 아예 못 드신다면 한 병 들이기 전에 바에서 한 잔 먼저 맛을 보는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 가격이 워낙 세다 보니 호불호 갈리면 타격이 크거든요. 저는 집에서 직구로 들였는데, 국내에서는 재고가 자주 끊기고 마트에서 보기는 거의 힘들었어요. 병을 다 비운 뒤에는 유리병이 예뻐서 디캔터처럼 장식용으로 쓰고 있는데, 술 마실 때보다 볼 때마다 더 흐뭇해지는 건 좀 웃기네요.
며칠에 한 번씩만 아껴 마셨더니 한 병을 꽤 오래 두고 즐길 수 있었어요. 카바 데 오로 엑스트라 아네호를 쓰다 보니, “오늘은 그냥 기분 좋은 날이다” 싶은 날에만 꺼내게 되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가격 생각하면 자주 마시기엔 부담스럽지만, 한 잔 따라 놓고 향 맡으면서 천천히 홀짝이는 그 시간이 꽤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데킬라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도 확 바뀌었고요. 언젠가 다시 구할 수 있으면, 그때는 친구들 몇 명 불러서 한 잔씩만 돌려 마시면서 각자 어떤 향이 느껴지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네요.
